기사 메일전송
CEO ESSAY ‘하영호 신촌설렁탕’ 하영호 대표 성공스토리
  • 프로필이미지 편집국 편집장
  • 등록 2014-08-27 23:38:19

기사수정
  • 그의 설렁탕 맛보다 더 진한 인생이야기

CEO ESSAY

‘하영호 신촌설렁탕’ 하영호 대표 성공스토리

그의 설렁탕 맛보다 더 진한 인생이야기



유소년시절을 가정형편상 마이너리거로 살아오면서 ,공부보다는 스포츠와 음악에 대해서 흥미와 취미를 가지고 ,지내다가 학교성적은 바닥수준인데 분수에 맞지않게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인문계가 아닌 특목고 서울북공고에 턱걸이로 진학하였다.

초인적인 노력으로 목표대로 명문대 진학의 꿈을 이루었으나, 외국어실력부족으로 대학생활 내내 외국어 공부에 몰두하여야했고, 대학졸업 후 일본에 어학연수 후

대학원진학을 꿈 꾸다 일본에 계신 작은 누님의 배려로 창업자금을 알선해준다고 해서 3개월만에 귀국했다가 창업자금대출이 무산되는 바람에 창업도 못하고 일본유학도 못하는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발생하였다. 취업시즌이 지나서 뒤늦게 취업하려고 발버둥치다가 수도 없이 취업에 도전하였으나 낙방을 밥먹 듯 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주부생활을 발행하는 학원사에 민주일보 공채1기에 200대1 경쟁을 뚫고 입사할수 있었다.

신문사에 취업목적은 처음부터 정보습득과 상권파악이 주목적이었다.

나는 취재를 목적으로 자료을 요청하고 맛집탐방을 하면서 각 집마다 차별점을 파악하고 벤치마케팅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언론계종사자들은 그 지역에 맛집들을 줄줄이 외울정도라서 미래에 창업을 준비 중인 나에게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유소년시절에 겨울이 지나고 명문대 진학이라는 봄이 왔다면 새로운 신문사생활은 차가운 겨울의 시작이었다.

당시 일본서 귀국 후 소규모 식당창업을 꿈꾸는 나에게 대구에 사시는 큰누님이 요식업에 종사하면 결혼 하기가 여의치 않으니 직장생활을 권유하여 임시방편으로 들어간 신문사생활은 메이저신문사가 아니라서 사회에서 자랑할만한 직장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자존심은 나를 웅크리게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결혼전 식당창업을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던 아내가 결혼 후 창업을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사태가 벌어져 절치부심7년 이라는 신문사생활을 울며겨자먹기로 하였다. 하지만 나는 창업에 대한 꿈을 포기 하지 않았다. 직장생활도중에 틈만 나면 인근에 있는 여의도국회도서관에서 일주일에 3~4차례 업무시간 중에 틈을 내어서 창업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스크랩북만10권이 이상 만들었다.

IMF으로 온 세상이 경제가 어려운데 내가 다니던 신문사는 급성장을 하고 있어서 그 흔한 명예퇴직혜택(?)도 못받고 내발로 회사를 퇴직하고 드디어 강남구 신사동에18평 C급상권 무권리점포에 설렁탕전문점을 개업하였다.

하지만 직장생활하면서 실물경기를 너무나 모르고 탁상공론에 그쳐 설렁탕집은 창업2개월만에 실매출이 바닥을 향해서 끝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

영하10도 차가운 겨울에 전단지배포를 배포하고 집집마다 전단지부착하면서 몸으로 매장홍보를 하였다 그것만이 최선이었다.

가두에서 직접홍보물을 배부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매장에 한 사람 한 사람 단골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어느덧 점심시간에 줄을 서는 맛집으로 변신하기 시작하였다.


외진 곳에 위치한 매장을 알리고자 전단지에 사탕을 부치고 길거리배부하고 불법현수막에

공무원단속을 수없이 받으면서 게릴라식으로 현수막부착하여 단골손님을 늘려가기 시작하였다.

점심시간에 18평의 작은매장에 손님은 절반밖에 차지 않고 종사원은 넘치고 내가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영하10도 차가운 겨울에 전단지배포를 배포하고 집집마다 전단지부착하면서 몸으로 매장홍보를 하였다 그것만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중년의 노신사들이 식당 사장이 한겨울에 가두에서 직접홍보물을 배부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매장에 한 사람 한 사람 단골들이 늘

 

내청소년시절을 마이너리그로 살아온 것이 훗날 겸손이라는 미덕을 배울수 있었다. 그런 내 젊은 시절의 역경에게 감사한다.


어나기 시작하여 어느덧 점심시간에 줄을 서는 맛집으로 변신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외에도 피나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것에 하나로 겨울동안에 봄이 지나고 여름에는 더운 음식이 아무래도 소비가 줄 것이 예상하여 노심초사 추가메뉴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새로운 승부수 국내최초 즉석함흥냉면 제조 및 가마솥제조 설렁탕 배달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18평의 작은 매장에서 월 순수익 1천만원을 달성하려면 하루 종일 손님으로 들끓어야하는데

상권에서 오는 약점과 저녁에 식사손님위주로 손님이 편중되다보니 목표수익은 올릴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타 본경험이 전무한 나는 새 오토바이를 구입하여 그날로 부터 독특한 홍보용 메뉴스티커를 주, 야로 배부하여 주방에서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배달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17년 전 주 메뉴로 즉석함흥냉면을 도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자 유사업종에서 너도나도 함흥냉면을 주 메뉴로 취급하는 효시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창업5년만에 건물이 매각되고 철거되는 바램에 선택의 여지없이 새로운 매장으로 이전 개업을 하였다.

이전한 장소도 상권에서 오는 한계로 음식배달을 지속할 수박에 없었다.

하지만 오랜 꿈이었던 프렌차이즈 사업이 뜻밖에도 KBS VJ특공대, 아침마당에 출연을 계기로 창업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방송을 계기로 체인점사업을 동업자와 시작하였으나 동업자의 배신으로 토사구팽을 당하고 그해 광우병이 발생하여 또 한번의 위기가 발생하였다.

이 위기를 극복 하기 위하여 장고 끝에 마케팅원론에 나오는 포토폴리오를 구성하기위해서 새로운 선택은 보쌈, 육개장을 메뉴로 추가하였다.

마침내 사계절 주야 매출이 고르게 나오는 수익구조가 완성하였다.

창업 후 10년동안 국내 유수의 설렁탕집 제조 노하우에 대한 끝없는 수집으로 어느 정도 설렁탕에 대한정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설렁탕분야의 최고 명인을 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이때부터 설렁탕제조기술과 그동안 축적해놓은 이론공부가 결합되어 일신우일신 설렁탕분야의 최고의 고수로 발전하는 장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장안의 설렁탕분야의 고수로 활약이 이어지자 각 방송 및 신문잡지사의 인터뷰 및 방송출연이 잦아지는 것을 무기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포탈사이트에 가맹점모집광고, 블로그 포스팅을 하여 알음알음 알려져 전수창업형태의 가맹점사업은 어느덧 52개점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주위에는 내노라하는 자본금과 브랜드파워를 앞세워 설렁탕 프렌차이즈사업을 시도하여도 별다른 업적을 못 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선발유명설렁탕업체들은 자신만의 명성에 취하여 꾸준한 기술개발과 대중과의 호흡을 무시한 결과 몰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않으리!

나는 창업에 대한 꿈을 포기 하지 않았다. 직장생활도중에 틈만 나면 인근에 있는 여의도국회도서관에서 일주일에 3~4차례 업무시간 중에 틈을 내어서 창업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스크랩북만10권이 이상 만들었다.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이제 나의 꿈은 대한민국최고의 사랑받고 자랑스러운 설렁탕전문점을 만드는 것이다.

“늘 줄서서먹는 맛집” 보다 현진건의 소설에서 죽기 전에 꼭 먹고싶은 음식이 설렁탕이라고 소설 속에 이야기가 현실이 되도록 “진정성 있는 음식, 손님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할수 있는 설렁탕전문점”을 만들고 싶다.

기나긴 설렁탕업계의 부침 끝에 최후의 승자의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음식칼럼리스트와 각 방송 맛집검증단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언론사선배 돌도리와의 만남은 음식에 대한진정성과 재료에 대해서 깊게 공부하는 계기가 되어 요즘도 음식이론공부에 흠뻑 빠져지낸다.

이제 나의 꿈은 대한민국최고의 사랑받고 자랑스러운 설렁탕전문점을 만드는 것이다.

“늘 줄서서먹는 맛집” 보다 현진건의 소설에서 죽기 전에 꼭 먹고싶은 음식이 설렁탕이라고 소설속에 이야기가 현실이 되도록 “진정성 있는 음식, 손님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할수 있는 설렁탕전문점”을 만들고 싶다. 종사원들에게 존경받는 사장이 되고 싶다.

기나긴 터널을 빠져 나와서 따뜻한 봄이 손짓한다. 그래 조금 더 힘을 내어 멋진 마무리로

대한민국최고의 설렁탕명인이자 자랑스런 설렁탕집을 만들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약속드린다.

마지막으로 내청소년시절을 마이너리그로 살아온 것이 훗날 겸손이라는 미덕을 배울수 있었다. 그런 내 젊은 시절의 역경에게 감사한다.






‘하영호 신촌설렁탕’하영호 대표는 설렁탕의 명가를 만들기 위해 10년 동안 전국팔도의 소문난 설렁탕집을 돌아다니며 제조과정을 공부하고 연구했다.

이러한 그의 칠전 팔기 성공스토리는 예비창업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는 창업노하우와 서비스를 재능기부를 통해 나누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성공은 아직“현재진행형”이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유튜브라이브
CEO in TV 서브메뉴 타이틀이미지
 News & Insights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COVER STORY -100년기업 지속 가능 경영 해법 100년 기업의 비밀 DNA COVER STORY -100년기업 지속 가능 경영 해법 100년 기업의 비밀 DNA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기업의 몰락 100년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해법 브라질 월드컵에서 더...
  2. 스토리가 있는 보석은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반조애 최나미 대표 모두 같은 반짝임이 아닙니다. 스토리가 있는 보석은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반조애 최나미 대표     ‘생생하게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을 절대적으로 믿는 CEO가 있다. ‘반조애’의 최나미 대표다. 야근을 많이 하던 시절 언니와 매장에 앉아 나중에 크게 되면 매장을 이렇게 꾸미자 하고 종이에 그렸던 그림이 지금 눈...
  3. Pay Gate CEO, Soyoung Park “I’ll make a change in Korea and make Korea a global financial hub.” “”It’s been a long time since we worked in partnership with renowned companies in Asia. Since we have a unique model and patent, we have a strong foundation. We’ll advance reasonably step by step. We made global enterprises use ours beyond borders. We’ll keep doing that”, says Soyoung Park, CEO of PayGate. She goes forward to the top in the world.
  4. 모닝글로리 변화와 혁신을 디자인한 문구시장의 절대 강자 ‘모닝글로리’ 외환위기 이후부터 시작된 경제 불황으로 인해 군소 문구제조업체의 어려운 실정이다. 그 뿐 아니라 급변하는 IT 시대의 도래로 정통문구시장이 상당히 위협받고 있는 요즘, 모닝글로리는 군소업체의 줄어드는 시장을 파고드는 반사이익을 얻어왔다. 학창시절부터 봐왔던 브랜드 ‘모닝글로리’. 그만큼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살아남았는...
  5. CEOIN BOOK & BOOKS CEOIN BOOK & BOOKS TED처럼 말하라 : 세계 최고 프레젠테이션의 25가지 비밀 “내가 이제껏 읽은 프레젠테이션 책 중에서 가장 명확하다.” - 재비어(아마존닷컴 리뷰어) “위대한 TED 강연을 위한 단순한 로드맵. 훌륭한 토스트마스터이자 인스트럭터, 지역 TED 위원회의 회원으로서 나는 이 책이 역동적이고 기억에 남는 TED 강연을...
}) }) })(jQuery)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