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은 성장의 열쇠
한국 경제, 공정성을 재설계하라"
2015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독일의 대표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이 디젤 배출가스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은 기업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익을 취했을 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기록됐다. 폭스바겐은 신뢰를 잃었고, 300억 달러 이상의 벌금을 물었다. 소비자는 등을 돌렸으며, 이는 곧 기업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기업의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다. 공정성을 잃은 경제 구조는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 나아가 국가 경제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경고한다.
한국 경제는 이 교훈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 속에서 우리는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고 있는가? 아니면 단기적 이익을 위해 중소기업과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며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가?
공정경제란 무었인가?
공정경제란 경제 주체 간의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법과 제도 아래 공정한 거래 질서를 유지하는 경제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가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김윤석 교수는 “공정경제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자유경제를 보완하며, 균형 잡힌 성장을 가능케 합니다. 특히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라고 강조한다.
공정경제는 특히 한국과 같은 국가에 필수적이다. 한국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거나 불공정 거래를 강요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기술 탈취 신고 건수는 2,000건을 넘었으며, 이 중 70% 이상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중소기업이 혁신과 성장을 이뤄내기 어렵다.
한국 경제에 필요한 공정경제 재설계
앞서 언급한 폭스바겐 배출가스 시험을 조작해 단기적 이익을 취한 사건은 약 44조 원에 달하는 벌금과 브랜드 신뢰도 하락이라는 대가를 치르며 전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이 사건은 공정성을 희생한 대가가 단순히 기업의 손실로 끝나지 않고, 국가 경제 전반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국 경제도 이러한 교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연 한국 경제는 얼마나 공정하며, 공정경제를 통해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
공정경제의 개념과 한국 경제의 특수성
공정경제는 경제 활동의 모든 주체가 동등한 기회를 가지며, 거래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이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혁신을 촉진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독특한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와 같은 대기업이 GDP의 약 70%를 차지하며 경제를 이끌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과의 불공정한 거래가 만연해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된 기술 탈취 신고 건수는 2,450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중소기업의 혁신과 생존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박민호 교수는 “한국의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는 초기 성장에는 기여했지만, 중소기업 생태계의 약화를 초래하고, 장기적으로 경제 전반의 혁신성을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불공정의 대가와 공정성을 실천한 성공 사례들
불공정 관행은 약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경제의 신뢰도까지 떨어뜨린다. 2016년 한진해운의 파산은 비용 절감과 독점적 운영의 실패 사례로, 해운업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8%에서 3%로 감소시키며 국제적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반면, 공정성을 기반으로 성공한 사례도 존재한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는 중소상공인을 위한 투명한 수수료 체계와 공정한 추천 알고리즘으로, 2022년 기준 입점 업체의 85%가 연 매출 1억 원 이상을 기록했다. 이는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도 중소업체와 상생하는 혁신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국제적으로는 핀란드의 Business Finland가 대표적이다. 핀란드는 공정한 거래 환경과 창업 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초기 자금 지원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 결과, 스타트업의 5년 생존율이 80%에 달하며, 혁신 기업 육성의 글로벌 모범사례로 자리 잡았다.
공정경제를 위한 제도적 대안, 정부와 민간의 역할
공정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도적 개선과 함께 정부와 민간의 조화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모범사례에서 힌트를 얻어 현실적인 대안을 실행해야 한다.
우선, 납품단가 연동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가격 협상 구조를 공정하게 만드는 핵심 정책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단순히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중소기업 거래로 확대해야 한다. 이는 일본이 납품 단가 상승률을 정부 기관과 협력해 매월 공개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중소기업 부담을 줄이고, 투명성을 높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술 탈취 방지법은 피해 기업이 실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강화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피해 보상이 소송 비용과 시간 대비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많다. 독일의 경우, 기술 탈취 사건이 적발되면 손해액의 3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강력한 규정을 운영하며, 이를 통해 기술 혁신과 공정 거래를 촉진한다. 한국도 이를 벤치마킹해 위반 기업에 대해 공공 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정거래를 촉진하는 인증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공정 거래를 실천하는 기업을 정부 인증으로 홍보하며, 소비자가 공정성을 고려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국도 ‘공정거래 우수기업’ 인증제를 활성화해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기업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정거래 전담 기구설립이 시급하다. 피해 신고 접수부터 해결까지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가 마련된다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피해를 신속히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핀란드의 Business Ombudsman처럼 정부의 중재 역할을 강화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공정경제가 만들어갈 한국 경제의 미래
공정경제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필수 조건이다. 공정성이 보장될 때, 중소기업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고, 대기업은 건강한 경쟁 속에서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최경환 교수는 “공정경제는 단순히 도덕적 요구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서 한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고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가 공정성과 혁신이라는 두 축을 기반으로 글로벌 신뢰를 얻고,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길 기대한다. 이제는 공정이 혁신을 낳는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모두가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