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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동선 한국차인연합회 명예이사장 2주기 추도식… 추모 넘어 한국 차문화의 계승과 미래를 말하다
  • 프로필이미지 편집국 편집장
  • 등록 2026-09-28 23:15:55
  • 수정 2026-09-29 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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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격랑을 지나 차 한 잔으로 사람을 이었다”

故 박동선 한국차인연합회 명예이사장 2주기 추도식…

추모 넘어 한국 차문화의 계승과 미래를 말하다

정갑윤·김종규·고성배·손수일·박윤일 등 차문화·문화예술계 인사 한자리

1979년 한국차인연합회 창립에서 오늘의 차문화까지…반세기 역사와 사람의 인연 되짚어

전통 보존 넘어 인문학·예술·세대교류·민간 문화외교로…“차로 사람을 잇는 문화 이어가야”

“오늘 우리는 다시 한자리에 모여 이사장님의 숭고한 뜻과 발자취를 기리며 깊은 그리움을 나눕니다.”

 지난 21일 종로 (사)한국차인연합회 사무실에서 故 박동선 한국차인연합회 명예이사장 2주기 추도식이 이어졌다.

이날은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넘어섰다. 고(故) 박동선 한국차인연합회 명예이사장의 2주기 추도식에 모인 사람들은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회고하면서 지난 반세기 한국 차문화가 걸어온 길을 되짚었고, 이제 그 유산을 어떻게 다음 세대로 넘겨줄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1970년대 한미관계의 격랑 한복판에서 미국 워싱턴 정·재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했던 국제적 인물,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정치외교 사건인 ‘코리아게이트’의 중심에 섰던 논쟁적 인물, 그리고 생애 후반에는 한국 차문화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차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문화인. 박동선이라는 이름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기억이 겹쳐 있다.지난 21일 종로 (사)한국차인연합회 사무실에서 故 박동선 한국차인연합회 명예이사장 2주기 추도식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날 추도식의 분위기는 한 인물을 기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참석자들이 기억한 박동선은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사람을 만나고, 한국의 차와 문화를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어려운 문화예술인에게 손을 내밀고, 건강이 악화된 뒤에도 차문화 현장을 찾았던 ‘사람 박동선’에 가까웠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차문화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기독교차문화협회 박천현 회장의 진행으로 열린 이날 추도식에는 동양문화재단 김종규 이사장,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정갑윤 한국차인연합회 회장, 사단법인 한국차문화연합회 고성배 회장, 서울차인회 손수일 회장과 박윤일 사무총장을 비롯해 차문화계와 문화예술계 인사, 고인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지인들이 참석했다.

추모기도와 추도사에 이어 참석자들이 자연스럽게 고인과의 기억을 풀어놓으면서 행사는 형식적인 의례보다는 한국 차문화의 한 시대를 함께 지나온 사람들이 서로의 기억을 확인하는 자리에 가까워졌다. 박천현 회장은 참석자 대부분이 박동선 명예이사장과 특별한 인연과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이야기를 청했고, 이후 김종규 이사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았다.

누군가는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함께했던 차문화 행사를 이야기했으며, 또 다른 이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공식적인 연설보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이어지면서 박동선이라는 인물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한국 차문화계의 오랜 관계망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사회를 진행한 세계기독교차문화협회 박천현 회장(사진)은 참석자 대부분이 박동선 명예이사장과 특별한 인연과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이야기를 청했고, 이후 김종규 이사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았다.

추모에서 ‘계승’으로…

반세기 한국 차문화의 시간을 돌아보다

그날 여러 이야기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단어는 ‘계승’이었다. 추도사에서는 고인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를 통해 마음을 맑게 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한국 차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그의 뜻을 이어가는 길이라는 취지의 메시지가 나왔다. 추모의 의미를 과거에 두기보다 미래로 연결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날 자리가 한국 차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자리로 확장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차인연합회가 걸어온 긴 역사가 있다. 한국차인연합회는 1979년 1월 20일 전국의 차인과 문화인들이 참여해 출범한 국내 최초의 차인 연합단체다. 현재는 전국 약 1300개 단위차회, 2만5000명 규모의 회원이 활동하는 전국 조직으로 성장했으며, 전통 차문화 보급과 차생활 예절 확산, 차 전문인력 양성, 국내외 차문화 교류 등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차인연합회를 이끄는 정갑윤 회장은 제16~20대 국회의원과 제19대 국회부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25년 한국차인연합회 제16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우리 고유의 차문화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차문화가 세계 차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사진 순서 동양문화재단 김종규 이사장,  사단법인 한국차문화연합회 고성배 회장, 한국차인연합회 제16대 정갑윤 회장)박동선 역시 그 출발점에 함께했다. 1979년 한국차인연합회 창립 과정에 참여한 이후 오랫동안 차문화계와 관계를 이어왔고, 자신이 가진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외국 인사들에게 한국의 차와 다례를 알리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참석자들이 이날 그의 차문화 활동을 단순한 취미나 단체 활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적 활동’으로 기억한 이유다.

현재 한국차인연합회를 이끄는 정갑윤 회장은 제16~20대 국회의원과 제19대 국회부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25년 한국차인연합회 제16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우리 고유의 차문화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차문화가 세계 차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반세기를 향해 가는 한국차인연합회가 이제 전통의 보존을 넘어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넓히고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자산으로 차문화를 확장해야 한다는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정갑윤·김종규·고성배·손수일·박윤일…한자리에 모인 문화계와 차문화계

동양문화재단 김종규 이사장이 이날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의미를 더했다. 출판과 박물관, 문화유산 보존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김 이사장은 박동선의 생애를 단순히 한 시대의 정치·외교적 사건만으로 바라보기보다 그가 문화계 사람들과 맺었던 관계와 역할까지 폭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이어갔다.손수일 회장과 박윤일 사무총장을(사진) 비롯한 서울차인회 관계자들이 이날 함께한 것도 고인과의 오랜 관계 때문이다.

박동선의 삶에서 정치와 외교가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이라면 차와 미술, 도자, 문화예술인들과의 교류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또 다른 영역이다.

고성배 사단법인 한국차문화연합회 회장을 비롯한 차문화계 인사들의 참석은 이번 행사가 특정 단체의 추모행사를 넘어 한국 차문화계가 공유하는 기억의 자리라는 점도 보여줬다. 고 회장은 오랫동안 지역 차문화 확산과 전통문화 계승, 차문화 교육과 교류에 힘써왔으며 박동선과도 오랜 시간 차문화 현장을 함께했다.

이날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차문화의 성장이 어느 한 사람이나 한 단체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국의 차인과 여러 차문화 단체, 문화예술인들이 서로 교류하며 만들어온 결과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정갑윤 회장이 이끄는 한국차인연합회와 고성배 회장의 한국차문화연합회, 손수일 회장의 서울차인회를 비롯한 여러 차문화 조직의 역할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통 차문화를 보존하고 생활 속으로 확산시키며 다음 세대와 연결해야 한다는 지향점은 맞닿아 있다. 이번 추도식은 여러 차문화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도 향후 단체 간 교류와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

서울차인회와 이어진 인연…차를 인문학·예술·교류의 문화로

그 가운데 서울차인회와 박동선의 인연은 유독 길고 깊었다. 서울차인회는 1999년 창립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차문화의 생활화와 교류 활동을 이어왔으며, 최근에는 차를 인문학과 예술, 리더십, 세대교류와 연결하려는 시도를 확대하고 있다.

손수일 회장과 박윤일 사무총장을 비롯한 서울차인회 관계자들이 이날 함께한 것도 고인과의 오랜 관계 때문이다.  

박윤일 사무총장은 서울차인회 창립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동선과 인연을 맺었고, 고인이 여러 일정과 건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울차인회 행사를 찾고 회원들을 격려했던 모습을 회고했다. 2000년대 초 차문화 행사에서 회원들과 함께했던 기억, 이후 여러 행사에서 인연을 이어온 이야기들도 소개됐다.

그 인연은 고인의 생애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건강이 크게 악화돼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던 상황에서도 박동선은 차문화 행사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장거리 이동을 걱정했지만 결국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경주까지 갔다.

8월 말 행사에 참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24년 9월 19일 그는 서울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였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날 추도식의 의미를 ‘박동선 개인에 대한 추모’에서 ‘한국 차문화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시켰다.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여러 단체와 사람 사이를 오가며 만든 관계가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오늘의 서울차인회가 차를 전통 다례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인문학과 예술, 사회적 교류로 확장하려는 것도 이런 관계의 정신과 연결된다. 차 한 잔을 통해 세대와 직업,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문화로 보는 것이다.

박수근 화백 가족과의 ‘25만원’…문화예술인과 맺었던 또 다른 인연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대표적인 화가 박수근의 가족과 박동선 사이에 얽힌 오래된 일화였다. 박수근 화백의 장남 박성남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가의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이날 자리에서는 박수근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박동선이 도움을 건넸다는 이야기가 추모시와 함께 소개됐다. 박수근 화백의 장남 박성남은(사진) 박수근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박동선이 도움을 건넸다는 이야기가 추모시와 함께 소개됐다.그 기억의 중심에는 ‘25만원’이라는 금액이 있었다. 당시 절박한 상황에서 박동선이 별다른 조건 없이 건넨 돈이 한 예술가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박수근 가족이 그 도움을 오래 기억했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는 일화도 이어졌다.

이 일화의 의미는 단순히 금전적인 도움에 있지 않았다. 국제정치와 외교의 무대에서 이름을 알렸던 한 인물이 다른 한편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인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기억, 그리고 그 작은 인연이 수십 년이 지나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다는 데 있었다.

박동선 자신이 사람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고인이 생전에 “차인은 가정이 건강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 했다고 기억했다. 차를 잘 우리고 다례의 형식을 아는 것보다 사람과 가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자녀를 잘 키우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주변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차인의 기본이라는 생각이었다.

숙연하기만 하던 자리에 웃음이 번진 순간도 있었다. 한 참석자가 어느 저녁 자리에서 누군가 박동선에게 “100세까지 건강하십시오”라고 건배사를 했던 일을 꺼냈다. 덕담을 들은 박동선은 자신의 나이를 계산해보더니 그렇게 말하면 앞으로 12년밖에 남지 않은 것 아니냐며 농담 섞인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농담을 즐겼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나왔다. 이날 추도식이 일방적으로 업적을 나열하는 행사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의 표정과 말투, 인간적인 면모까지 함께 기억하는 자리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워싱턴에서 차문화까지… 기록해야 할 89년

이런 인간적인 기억의 다른 한편에는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장면도 놓여 있다.

박동선은 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갔고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워싱턴을 중심으로 사업과 사교 활동을 펼쳤다.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폭넓은 관계를 형성했고, 그가 운영한 조지타운클럽은 워싱턴 정치·경제계 인사들이 드나드는 사교 공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네트워크는 훗날 그의 삶을 뒤흔든 정치적 사건의 배경이 됐다. 1976년 미국 언론의 보도를 계기로 한국의 대미 로비 의혹이 불거졌고, 이른바 ‘코리아게이트’로 확대됐다. 박동선은 1978년 미국 의회 공개청문회에 출석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른 활동이었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졌다. 박동선은 자신의 행동이 개인적 판단과 소신으로 한미 친선을 위한 것이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박윤일 사무총장은 서울차인회 창립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동선과 인연을 맺었고, 고인이 여러 일정과 건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울차인회 행사를 찾고 회원들을 격려했던 모습을 회고했다

이번 추도식에서도 이 역사적 이야기보다 박동선이라는 인물을 어느 한 장면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참석자는 국가의 외교력이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약했던 시절 젊은 한국인이 미국 사회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미국 정치권과 직접 교류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민간외교와 문화교류 활동까지 포함해 그의 삶을 다시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놓았다.

박동선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는 점은 오히려 이번 추도식의 의미를 넓힌다. 역사적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기록하고, 그가 한국 차문화와 문화예술계에서 맺었던 관계 역시 그 자체로 기록하는 것이 한 사람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박동선이라는 개인을 넘어 생각하면 이 문제는 한국 현대 차문화의 기록과도 연결된다. 1970년대 이후 차문화 운동을 일으킨 1세대 차인들이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어떤 단체를 만들었으며, 차를 통해 사회와 어떻게 소통했는지를 기록하는 것 역시 한국 문화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전통의 ‘보존’에서 사람과 세대를 잇는 

‘연결’의 문화로

무엇보다 이번 추도식이 던진 더 큰 질문은 ‘한국 차문화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였다.

한국 차문화는 오랫동안 지키고 보존해야 할 전통문화로 인식돼 왔다. 전통 다례와 차 예절, 차의 역사, 제다 기술과 다구 문화의 보존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차문화를 향유하는 세대도 달라지고 있는 만큼 이제는 보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인의 삶 속에서 차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할 시점이다.

그 가능성은 이미 여러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차와 인문학, 차와 예술, 차와 관광, 차와 음식문화, 차와 리더십, 차와 세대교류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차와 도자, 다례를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발전시켜 해외에 소개하는 것도 또 다른 가능성이다.


특히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사람의 관계마저 디지털 화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대라는 점에서 차문화의 가치는 새롭게 읽힐 수 있다.

차 한 잔을 제대로 마시려면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며 기다려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마시려면 마주 앉아야 하고, 상대의 잔을 살피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효율과 속도라는 기준만으로 보면 불편한 과정이지만 바로 그 느림과 기다림 속에 현대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관계의 방식이 담겨 있다.

한국차인연합회와 한국차문화연합회, 서울차인회를 비롯한 여러 차문화 단체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 단체가 가진 역사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대와 지역, 조직의 경계를 넘어 한국 차문화라는 더 큰 틀에서 교류할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차를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차와 인문학·예술·관광을 연결하며, 지역의 차와 도자문화를 하나의 문화자산으로 발전시키는 일도 필요하다. 나아가 한국의 차와 다례를 해외에 알리고 다른 나라의 차문화와 교류한다면 전통문화의 계승과 문화외교라는 두 목표를 함께 추구할 수 있다.

2주기 넘어 기록과 계승으로…“한국 차문화의 다음 반세기를 준비할 때”

추도식 말미에는 2주기를 계기로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 고인의 기억과 자료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앞으로의 추모·계승 사업을 준비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행사가 참석자들의 자비로 마련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향후 활동에 대한 협조도 요청됐다.김종규 이사장을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에게는 문화와 사람을 연결했던 인물이었고, 정갑윤 회장이 이끄는 한국차인연합회에는 1979년 시작된 차문화 운동의 역사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이 계획은 박동선 개인의 추모사업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 1979년 한국차인연합회의 출범부터 전국 차문화 운동의 확산, 지역 차문화 단체의 성장, 서울차인회를 비롯한 새로운 차문화 네트워크의 등장, 차와 문화예술의 결합, 국제교류까지 지난 반세기의 자료와 사람들의 기억을 함께 모은다면 한국 현대 차문화사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

당시를 직접 경험했던 1세대 차인들이 고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기록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사진 한 장, 행사 자료 한 권, 누군가의 오래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이야기를 모으고 정리해야 개인의 기억이 공동체의 역사로 남을 수 있다.

박동선은 2024년 9월 19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모인 사람들은 서로 다른 모습의 박동선을 기억했다.

김종규 이사장을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에게는 문화와 사람을 연결했던 인물이었고, 정갑윤 회장이 이끄는 한국차인연합회에는 1979년 시작된 차문화 운동의 역사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고성배 회장을 비롯한 차문화계 인사들에게는 수십 년간 같은 현장을 걸어온 동료였으며, 손수일 회장과 박윤일 사무총장을 비롯한 서울차인회 사람들에게는 몸이 불편해진 뒤에도 차문화 행사장을 찾았던 선배 차인이었다. 박수근 화백의 아들 박성남 화가 가족과 얽힌 오래된 일화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인에게 손을 내밀었던 또 다른 모습이 떠올랐다.

각자가 기억하는 모습은 달랐지만 

그 기억들이 만나는 곳에는 결국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2주기 추도식이 한 개인의 추모를 넘어 한국 차문화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차문화의 본질 역시 좋은 차를 마시는 데만 있지 않다. 차를 사이에 두고 사람을 만나고 상대를 존중하며, 세대를 연결하고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데 있다.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차를 접할 수 있는 콘텐츠, 차와 인문학·예술·관광을 결합한 문화 프로그램, 지역 차문화의 활성화, 그리고 한국 차문화를 세계와 연결하는 지속적인 교류가 그 다음 과제가 될 수 있다. -사진제공  서울차인회 박윤일 사무총장

1979년 시작된 한국 차문화 운동은 이제 반세기를 향해 가고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전통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그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일이다.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차를 접할 수 있는 콘텐츠, 차와 인문학·예술·관광을 결합한 문화 프로그램, 지역 차문화의 활성화, 그리고 한국 차문화를 세계와 연결하는 지속적인 교류가 그 다음 과제가 될 수 있다. 

“차를 통해 마음을 맑게 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한국 차문화를 발전시키는 것.”

이날 추도식에서 나온 이 말은 이제 고인 한 사람을 추모하는 문장을 넘어 한국 차문화계 전체가 생각해볼 화두로 남았다.

추모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추모는 그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고 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 있는 가치로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날 사람들은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 하지만 자리를 마칠 무렵 남은 질문은 한 사람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차를 통해 무엇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차 한 잔에서 시작된 인연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들이 모여 반세기의 역사를 만들었다. 이제 그 역사를 기록하고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다음 세대와 세계로 연결하는 일이 한국 차문화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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