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팀 보험사 오너 3세, 경영 전면으로…
한화·교보·현대 ‘세대교체’로 미래 판 다시 짠다
AI·글로벌·ESG 전면 배치된 차세대 리더십… 기대와 함께 ‘대 잇는 경영’ 검증 시험대
국내 주요 보험사들이 오너 3세를 경영 전면에 배치하며 본격적인 세대교체 국면에 들어섰다. 보수적 산업으로 분류돼 온 보험업이 인공지능(AI), 글로벌 금융,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미래 키워드를 앞세워 변신을 시도하는 가운데, 오너 3세들이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실질적인 전략 실행자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교보생명은 정기 인사를 통해 신창재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신중하 상무를 전사 AX(인공지능 전환) 지원담당 겸 그룹경영전략담당으로 임명했다. 새로 신설된 전사 AX 지원 조직은 AI 전환 전략 수립부터 실행까지를 총괄하는 핵심 부서로, 교보생명의 디지털 전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신 상무는 기존에 담당해온 AI 활용 지원, 고객의 소리(VOC) 데이터 업무를 넘어 그룹 차원의 미래 경영 체제 구축을 실무적으로 책임지게 됐다.
신 상무는 2015년 교보생명 관계사 KCA손해사정에 입사한 이후 교보DTS를 거치며 IT·빅데이터 경험을 축적했고, 2022년 교보생명으로 복귀해 그룹데이터전략팀장과 그룹경영전략담당을 역임했다. 지난해 말 상무 승진을 계기로 본격적인 ‘경영 수업’ 단계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생명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사장이 글로벌 사업 확장의 선봉에 서 있다. 1985년생인 김 사장은 2014년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디지털팀장으로 입사해 한화생명 전사혁신실, 디지털혁신실, 해외총괄 등을 두루 거쳤다. 2023년에는 최고글로벌책임자(CGO)로서 사장에 오르며 사실상 글로벌 성장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김 사장의 행보는 공격적이다. 2023년 인도네시아 리포손해보험 지분 인수를 시작으로, 올해에는 인도네시아 노부은행 지분 40% 인수,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지분 75% 확보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연이어 성사시켰다. 지난 12월 아부다비에서 열린 ‘아부다비 파이낸스 위크(ADFW) 2025’에서는 중동을 차세대 성장 시장으로 규정하고 아부다비를 전략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한화생명은 이미 아부다비 주재 사무소를 설립했고, 계열사 한화자산운용도 현지 법인을 출범시키며 금융 생태계 구축에 나선 상태다.
현대해상에서는 정몽윤 회장의 장남인 정경선 전무가 ESG와 지속가능경영을 전면에서 이끌고 있다.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를 맡고 있는 정 전무는 2012년 비영리 소셜벤처 지원 조직 루트임팩트에서 활동한 데 이어, 2014년 임팩트 투자사 HGI를 설립하는 등 ESG 분야에서 독자적인 이력을 쌓아왔다. 현대해상은 최근 조직개편과 세대교체를 통해 정 전무의 역할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사를 주요 보직에 배치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보험사 오너 3세 경영 전면화가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보험업의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 주목한다. AI를 통한 비용 효율화와 리스크 관리, 글로벌 금융시장 진출, ESG 기반의 지속가능경영은 보험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축이기 때문이다. 젊은 리더들이 전략·디지털·지속가능성 영역에서 직접 의사결정에 나서면서, 보다 민첩한 경영이 가능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다만 우려의 시선도 공존한다. ‘대를 잇는 경영’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엄격하고,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나 조직 개편이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전문경영인보다 더 큰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능력과 성과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며 “오너 3세 경영은 기회이자 동시에 가장 냉정한 시험대”라고 말했다.
보험사 오너 3세들의 전면 등장은 이제 시작 단계다. 이들이 AI·글로벌·ESG라는 키워드를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할 수 있을지, 보험산업의 다음 10년을 가를 시험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