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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온리퀴드 김완주 회장, 한 알의 약에 인생을 담다. 꿈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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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5-08-07 03:01:35
  • 수정 2025-08-15 01: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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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필 원드림(One Pill, One Dream)

 “철학이 있는 신약, 열정이 있는 기업가”

 김완주 회장, 한 알의 약에 인생을 담다.

꿈을 담다

 KR10664, 그 한 알이 열어준 길

1989년 3월 22일, MBC 뉴스데스크의 첫 꼭지에서 한 신약 후보물질이 소개됐다. 기존 항생제보다 100배 이상 강한 항균력을 가진 2세대 퀴놀론계 항생제 KR10664. 이 신약 후보물질을 만든 이는 한국화학연구소 의약연구부장이었던 김완주 박사였다. 그는 그때 마흔일곱이었다.

"그 약은 내가 만든 664번째 화합물이었습니다. 전임상까지 모두 통과했고, 당시에 기술료로 2100만 달러를 받았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280억 원 정도다. 우리나라 기술이 선진국에 수출된 첫 사례였습니다."

기술 수출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 신약 개발은 ‘먼 나라 이야기’로 여겨졌던 시절에, 김완주 박사는 화합물 스크리닝을 반복하며, 약효, 독성, 물성을 하나하나 검토해 나갔다. 당시 한국화학연구소는 신약 개발을 위한 인프라도, 예산도 열악했지만, 그는 기어이 해냈다.

그의 인생의 첫 신약 후보였다.

당시 이 약은 벨기에 얀센제약에 기술 이전되었다. 국내 기술로 선진국 제약사에 수출된 최초의 사례이자, 세계 바이오 의약사에 기록된 'K-신약 기술 수출 1호'였다.“약학이라는 게 뭐냐?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학문이다. 그러면 생명을 살리는데 어떻게 살리느냐? 약으로 살린다 그럼 그 약은 어떻게 하느냐? 질병도 발전을 하는데 새로운 질병이 계속 나오면 새로운 약이 나와야 되고 그런 때 새로운 약을 개발을 해야 된다. 여기서부터 이제 신약 개발에 대한 그런 욕구랄까 이런 게 이제 생긴 거예요”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신약개발이라는 연구를 내가 처음 시작한 거예요"(사진 김완주 회장)국민의 상식책에 실린 과학자

그해, 김완주 박사는 국민적 ‘스타’가 됐다. 대학생들이 들고 다니던 일반상식 책에는 ‘김완주 박사’의 이름과 신약 개발 성공 사례가 실렸고,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과학자가 방송에 나오고, 그의 성과가 신문 1면을 장식하던 시대. 하지만 그는 들뜨지 않았다.신약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다. 연구자가 드러나는 순간, 기술은 가려진다는것. 그는 조용히 연구하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세상은 그를 기억했다. 화학연구소의 이름보다 ‘KR10664’와 김완주 박사의 이름이 더 유명해졌다. 수많은 연구자들에게도, 젊은 과학도들에게도 그는 하나의 길이 되었다.

 약학자가 되기 전, 문과생 김완주

그의 시작은 공교롭게대학에 떨어져 재수에서 부터다. 원래는 문과였다. 정치외교학과를 희망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곳이 문과가 아닌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이었다.

 “그냥 면허라도 있어야지, 밥은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냐.”어머니의 한 마디에, 그는 처음으로 ‘약대’라는 학과 되뇌었다. 수학 1조차 배운 적 없는 문과생에게 이과 전환은 그야말로 어려운벽이었지만, 성균관대 약대가 수학 1만 치른다는 정보 하나를 붙잡고 수개월을 수학 교과서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는 합격했다. 그 순간, 김완주의 삶은 단순히 ‘전공’이 바뀐 것이 아니었다. 역사가 새 길을 낸 날이었다. 이과로 옮긴 전직 정치지망생. 그 낯선 여정을 그는 “처음엔 그저 약사가 되어 약국을 하려고 했다”고 웃으며 회상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약국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그는 곧 깨달았다. 약학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약은 병을 고치는 기술이고, 신약은 아직 치료제가 없는 병에 대한 도전이었다.“어느 순간 확신이 들었죠. 이 길이 내 길이다.”이후 그는 유학을 결심했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로 향했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받았다.

“독일 유학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철학을 배운 곳이죠.”

독일에서 철학을 배우다... 강물은 왜 흐르는가

그가 독일로 유학을 떠난 것은 “약국 일은 너무 허무하다”는 회의감에서 비롯되었다. 복약지시대로 약을 꺼내주는 일은 학문적 열정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선택했다. 독일로.독일 교육은 달랐다. 기능 이전에 철학이었다. “강물은 왜 흐르냐”고 묻던 교수의 이야기를 그는 지금도 기억한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나온 유학생조차 대답하지 못한 질문.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니까요.” 이 단순한 답을 통해 독일 교육은 ‘질문의 근본’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철학 없는 학문은 껍데기입니다. 약학도 마찬가지예요. 왜 약을 만들어야 하는가, 왜 새로운 질병에 새로운 약이 필요한가?이 질문이 철학이자 출발점이에요.”그는 독일에서 그 철학을 배웠고, 평생을 관통할 연구자의 관점을 얻었다. 약학이란 생명에 대한 응답이며, 질병에 맞선 인간의 윤리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신약개발’이 단지 산업이 아닌, 철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저와 굉장히 잘 맞은 거죠. 약대에 가서부터 약학 본질이라는 걸 공부는데 독일은 교육제도가 철학이 항상 밑바탕에 깔려 있어요. 그러니까 약학이란 게 뭐냐 약학을 왜 공부를 하느냐 이런 데서부터 시작을 하는 거예요”

“약학이라는 게 뭐냐?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학문이다. 그러면 생명을 살리는데 어떻게 살리느냐? 약으로 살린다. 그럼 그 약은 어떻게 하느냐? 질병도 발전을 하는데 새로운 질병이 계속 나오면 새로운 약이 나와야 되고 그런 때 새로운 약을 개발을 해야 된다. 여기서부터  신약 개발에 대한 그런 욕구랄까 이런 게 생긴 거예요”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신약개발이라는 연구를 내가 처음 시작한 거예요"

 김완주 회장은 독일어 논문 3편을 SCI급 저널에 게재하며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미국 신시내티 대학에서도 포닥 과정을 밟는다. 죽음을 멈추는 학문, 약학이란 무엇인가

독일에서 약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김완주 회장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한 기능적 기술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수업이 ‘약학 개론’에서 끝나지 않았다. 첫 수업의 제목은 “Warum studieren Sie Pharmazie?”—“당신은 왜 약학을 공부하는가?”였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 질문 하나에 세 시간이 걸렸다. 약학이 왜 존재해야 하며, 인류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고. 기능적인 설명은 금기였다는 것.그는 이 질문의 끝에서 ‘약학이란 죽음을 늦추는 학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명을 존엄하게 만드는 인간의 마지막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닿아야 의미가 있다.

그는 독일어 논문 3편을 SCI급 저널에 게재하며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미국 신시내티 대학에서도 포닥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자 유치 정책에 감명을 받고 귀국을 결심한다. 김회장은 “그때 공항에서 영주권(그린카드)을 받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연구자는 조국을 위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 당시를 회고 했다.

 귀국 후 KIST 1호 신약개발자, 연구자의 길을 걷다

1970년대 말, 서울 도곡동 한 복판. 막 설립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청사는 회색 시멘트 벽과 녹슨 철문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한국 과학계의 첫 씨앗들이 자라고 있었다.그는 귀국하자마자 KIST에 연구원으로 임용된다. 당시 의약 분야는 그야말로 백지 상태였다. “연구라고 할 것도 없었어요. 실험장비도 없었고, 논문도 구하기 힘들었죠.”

그는 국내 최초로 ‘신약개발’이라는 말을 꺼낸 사람 중 하나다. 천연물 기반 항암 후보물질 탐색, 간기능 개선제, 소염진통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구상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일본과 미국의 기술을 벤치마킹했다.실제로 그의 지도 아래 KIST는 1980년대 중반까지 13종 이상의 신약후보물질을 도출해냈고, 이 중 일부는 국내 제약사로 이전되어 제품화되었다. 그는 국내 제약 산업의 ‘비임상 개발’과 ‘GLP(비임상시험 우수관리기준)’ 체계를 정립하는 데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문제는 연구 환경이 아니었다. “감사원이 들어오고, 예산 집행의 자율성이 사라졌어요. 연구자가 감사 서류를 쓰는 시간이 늘어나니, 실험이 멈췄죠.”

그는 결국 KIST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대신 선택한 길은, 대학 교단이었다.바이온리퀴드의 연구소는 이온성 액체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항체의약품의 경구제형화’를 집중 개발 중이다. 현재까지 국내외 논문 14편, 공동특허 6건이 출원됐다. 이 기술로 제2의 상장을 꿈꾸고 있다.그는 기술은 상장을 하면 공공재가 된다는 소신이다. 감사와 예산에 갇힌 연구, 교수로서의 좌절과 도전

성균관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김완주 회장의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강의실엔 학생보다 데모 플래카드가 먼저 걸려 있었다. “제일 앞에서 데모하던 여학생은 1년 내내 수업에 안 들어왔어요. 대신 외부 활동을 하더라고요.”그는 강의보다, 학생을 ‘불러들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실험실도, 실습도 충분하지 않았고, 교수들의 연구 여건은 녹록치 않았다. 학문적 발전이 이뤄지기 쉽지 않았고. 특히 응용과학이나 제약은 전공이 없는 대학에서는 키우기 어려웠다.

그 무렵, 그의 옛 동료였던 최영복 박사가 과기처 장관으로 임명되며 다시 그를 불렀다. 그는 화학연구원 식물신물질 사업단장으로 재입성했고, 이후 안전성센터와 독성시험센터 설립을 주도했다.그러나 또 한 번 제도적 벽에 부딪힌다. 연구보다는 정무가 중요해진 것이다. 구성원이 특정고등학교 출신으로 바뀌니까 지방 출신 연구자들은 밀려나고 전주고 출신이었던 김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이때 그는 생각한다. “이 나라에서 내 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연구소도, 대학도 아니구나. 기업을 해야겠다.”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 200개 육성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제시했고, 그는 그 가운데 가장 이질적인 이력을 가진 창업자가 되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전직 국책연구소장, 박사 2개 보유자, 그는 신생 제약회사 ‘시트리’를 창업한다.

 벤처 창업, IMF의 잿더미 위에 피어난 시트리

1998년 1월, 서울 종로구 한 허름한 사무실. IMF 외환위기의 충격이 온 나라를 덮치고 있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대기업조차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내보내던 때. 김완주 회장은 이 절망의 시기에 한 장의 창업등기부를 들고 남양주 공장 부지를 찾아갔다.

“사람들이 말렸죠. 왜 안정적인 국책연구기관을 나와서 고생을 하느냐고. 그런데 오히려 그때가 기회였어요.”그는 IMF를 ‘거대한 리셋 버튼’이라 봤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 200개 육성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제시했고, 그는 그 가운데 가장 이질적인 이력을 가진 창업자가 되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전직 국책연구소장, 박사 2개 보유자, 그는 신생 제약회사 ‘시트리’를 창업한다.

초기에는 어렵게 인수한 제약공장을 재가동하며 기본적인 제네릭(복제약)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니까 시트리는 투트랙 전략이라는 걸 썼어요 하나는 매출을 올려야 되니까 기존에 있는 공장을 가동해 의약품들을 생산을 해서 팔아서 매출을 올리는 동시에 연구소를 설립해서 신성장 동력으로서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으로 나갔죠.”

 “생존을 위해선 현금이 필요했습니디. 일단 돌려야 다음이 생겨요.”즉 그는 단순히 제네릭만 바라보지 않았다. 동시에 강원도 춘천에 새로운 연구소 부지를 마련하고, 차세대 약물전달기술(Drug Delivery System)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투트랙 전략’하나는 안정적 매출, 하나는 미래 성장이 이때 출발했다.

 제약과 유통의 분리 실험, 프랜차이즈로 확장한 철학

“약은 만들면 끝이 아니다. 팔아야 산다. 그런데, 어떻게 팔 것인가?”김완주 회장은 시트리를 운영하며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판매망 구축'이었다. 제약업계의 오래된 병폐'리베이트,' 도매상에게 약을 팔기 위해선 비공식적인 리베이트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었고, 그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는 연구자로서 비자금을 만드는 회계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약은 제약대로, 유통은 유통대로 나누기로 했습니다.그가 구상한 것이 약국 프랜차이즈 시스템이다. 제약사가 제조만 하고, 판매는 가맹 도매상이 담당하는 구조. 독립된 유통 구조에서 리베이트 없이 약을 유통할 수 있는 길을 실험한 것이다.그는 전국에 50개 이상의 도매 가맹점을 확보했고, 이 유통망을 기반으로 제네릭 의약품은 안정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한다. 당시 시트리는 300명 이상의 직원을 두었고, 연매출 5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상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나는 제도까지 설계했죠.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를 만든 거예요.”

 한미약품 설계자, 세파 항생제와 기초화학의 성공 방정식

“세파(세팔로스포린)만 하세요. 그거면 먹고삽니다.”

1980년대 후반, KIST 재직 시절. 국내 제약사들은 미국과 일본을 따라가기 바빴고, 연구 개발은 대부분 복제 수준에 머물렀다. 그 무렵, 한미약품의 창업자 임성기 회장이 KIST를 찾아왔다. 신약 아이템을 달라는 요청이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템 하나에 집착하지 마세요. 전문화 하세요.”

그렇게 제안한 것이 ‘세파 계열 항생제 집중 전략’이었다. 그는 세포탁심, 세프트리악손 등 3세대 항생제에 집중하라고 조언했고, 임 회장은 그를 전속 자문으로 영입한다. 이후 그는 한미약품 연구소 설계, 원료 합성공장 ‘한미정밀화학’ 창립, 연구개발 자회사 설계까지 ‘한미 DNA’를 심었다.

한미약품의 세파 계열 점유율은 10년 만에 국내 1위로 올라섰고, 그는 기초화학 기반의 국산화를 이끌었다. 연구소는 판교에 설립되었고, 이때부터 바이오 기반의 연구도 함께 시도된다.

그와 임 회장과는 경영 파트너였으며 단순한 자문이 아니었다. 한미약품의 전략, 연구, 구조 설계자였다. 그리고 이 모든 철학은 ‘전문화’라는 단어로 귀결됐다.한미약품의 세파 계열 점유율은 10년 만에 국내 1위로 올라섰고, 그는 기초화학 기반의 국산화를 이끌었다. 연구소는 판교에 설립되었고, 이때부터 바이오 기반의 연구도 함께 시도된다.

 이온성 액체와 약물 딜리버리 혁신의 시작

“주사로만 맞던 약을, 알약으로 먹을 수 없을까?”

이 물음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김완주 회장의 대표적 연구인 ‘이온성 액체 기반 의약품 딜리버리 기술’이다.  “정맥주사를 놓으려면 굉장히 힘들어요. 이게 병원에 누워있어야 되고. 링겔병을 꽂아야 되고 하루종일 링겔주사를 맞아야 돼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편하게 복용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기존의 항암제, 항체의약품, 펩타이드 등은 분자량이 크고 불안정해 경구 투여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약물 분자를 ‘이온화된 액체 형태’로 변환시키면, 소화관 내에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바이온리퀴드는 약물투여 문제를 ‘이온성 액체(ionic liquid)’ 기술로 해결하고자 설립된 바이오기업이다. 2023년 4월 창업해 정맥주사 또는 피하주사로 투여되는 약물들을 ‘이온성 액체’ 기술을 통해 더 편하게 투여할 수 있다면 획기적인 변혁이 될 것이라는 바람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현재는 바이온리퀴드의 정호철 대표(사진)가 이어받으면서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현재 운영중인 바이온리퀴드는 이러한 약물투여 문제를 ‘이온성 액체(ionic liquid)’ 기술로 해결하고자 설립된 바이오기업이다. 이 회사는 2023년 4월 창업해 정맥주사 또는 피하주사로 투여되는 약물들을 ‘이온성 액체’ 기술을 통해 더 편하게 투여할 수 있다면 획기적인 변혁이 될 것이라는 바람을 가지고 설립, 연구해 왔다. 현재는  정호철 대표가 바이온리퀴드를 이어받으면서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김 회장은 수년간 수백 건의 합성실험과 마우스 실험을 거쳐, 일부 항암 물질이 이온성 액체 형태로 위산 환경에서도 분해되지 않고 흡수된다는 실험결과를 도출한다. 나노 기술과 접목한 DDS 모듈은 기존의 주사제를 경구제제로 전환하는 데 혁신적 실마리를 제공했다.“알테오젠이 피하주사 전환에 성공했죠. 하지만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갔어요. 

정맥주사 → 피하주사 → 알약으로가 진행 중입니다.”그의 연구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기술, 의료 현장을 바꾸는 철학이었다. 그 기술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동물시험 일부가 끝났고, 상용화를 위한 전임상 디자인이 마련되어 있다.

 다시 연구소로.. 

실험실 불을 끄지 않는 

아니 끌수 없는 그

시트리 매각 이후, 그는 다시 연구소로 돌아왔다. 춘천 연구소가 HLB에 의해 폐기되자, 그는 자신이 모은 자본으로 새로운 개인 연구소를 설립한다.기술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회사를 가지면 연구는 사라진다는 것이 김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지금도 실험실로 출근한다. 동물실험용 데이터를 체크하고, 논문을 쓰고, 젊은 연구원들과 토론한다. 실험이 끝나면 폐기물도 정리를 하고, 연구노트를 정리한다. 연구소는 이온성 액체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항체의약품의 경구제형화’를 집중 개발 중이다. 

현재까지 국내외 논문 14편, 공동특허 6건이 출원됐다. 그는 이 기술로 제2의 상장을 꿈꾸고 있다.그는 기술은 상장을 하면 공공재가 된다는 소신이다. 회사는 비상장 벤처기업이지만, 내년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그는 ‘이 기술은, 단지 알약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바꾸는 도구’라고 말한다.

독일 교육에서 배운 철학적 사유의 본질

왜?(why)

김완주 회장이 수차례 강조하는 것은 ‘철학의 중요성’이다. 단지 논리나 지식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 그는 독일에서 그것을 배웠다고 말한다.“모든 수업의 출발은 질문이었습니다. 기능을 배우기 전에, 반드시 개념을 묻고, 의미를 따지고, 존재 이유를 토론해야 했죠.”

 김 회장은 이 철학적 기초가 연구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질병은 왜 생기는가? 인간은 왜 죽는가? 약은 무엇을 바꾸는가? 이런 질문 없이는 약을 만들 수 없다는 것.’그는 신약 개발을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윤리적 탐색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지금도 젊은 연구자들에게 ‘논문보다 먼저 질문을 적으라’고 말한다.김완주 회장은 제안한다. “GMP 기준 매출의 5%는 반드시 기초과학에 투자하라.” 그 5%가 미래 산업을 지탱할 기둥이 된다는 확신이다.산업계에 던지는 뼈 있는 충고

답은 기초 과학

“우리나라 바이오기업 중 80%는 기술은 있어도 매출이 없습니다. 15%는 매출만 있고, 기술이 없습니다. 5%만 둘 다 갖췄죠.”그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냉정히 진단한다. 기술 편중, 매출 구조 부재, 반복되는 자금 유치의 굴레. 특히 “R&D는 있지만 ROI(수익률)는 없는 구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그는 셀트리온과 알테오젠을 모범 사례로 든다. 셀트리온은 기술과 매출을 동시에 확보했고, 알테오젠은 기술 하나로 글로벌 라이선스를 성공시켰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연구소에만 갇혀 있다.”

“기술은 혼자 못 큽니다. 연구소에서 제품이 나와야 시장이 생깁니다. 그래야 회사가 삽니다.”그는 제안한다. “GMP 기준 매출의 5%는 반드시 기초과학에 투자하라.” 그 5%가 미래 산업을 지탱할 기둥이 된다는 확신이다.

그는 기술의 상용화, 수익화 전략, 그리고 경영의 중요성을 바이오기업에 끊임없이 설파한다. 특히 M&A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모자란 걸 가진 회사를 흡수해서 단번에 크고. 혼자선 늦다는 것.그의 또 다른 제언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예산 분리’다. G7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정책의 허점을 잘 안다.“당시 G7 프로젝트가 모든 연구비를 빨아들이면서, 기초과학이 죽었습니다. 대학 교수들조차 응용과제만 했죠. 그때 만든 시스템의 부작용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는 제안한다. “GMP 기준 매출의 5%는 반드시 기초과학에 투자하라.” 그 5%가 미래 산업을 지탱할 기둥이 된다는 확신이다.

  젊은 기업가들에게... 유럽으로 가라

 스스로를 질문하라“나는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그는 강의나 인터뷰에서 자주 “미국 대신 유럽을 보라”고 말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유럽은 작은 나라들이 세계를 움직입니다.”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인구 500만 내외의 소국들이 글로벌 제약·화학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현실. 노벨상을 만들고, 특허와 기술에서 글로벌 벤치마크가 되는 나라들이다.“스위스를 보세요. 기술을 사고파는 문화가 있고, 기초과학을 존중하죠. 덴마크는 기술자도 장관이 되고요. 우리는 아직, 박사도 자영업자 신세입니다.”그는 젊은 창업자들에게 ‘질문하는 습관’을 가르치라고 한다. “왜 이 기술을 만들었는가?”, “이 기술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원필 원드림,  김완주 회장의 지원군 그의 가족

신약에 담은 철학과 꿈

2024년 겨울, 김완주 회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다. 제목은『원필 원드림(One Pill, One Dream)』. “한 알의 약에 내 인생을 담았다”는 문장이 머리말에 적혀 있다. 

원필 원드림(One Pill, One Dream) 즉 한알 약에 신약개발의 꿈 이다.책은 1부와 2부로 나뉘며, 현재는 1부만 출간된 상태다. 1부는 유년기부터 독일 유학, 창업까지의 여정을 담는다. 2부는 현재 집필 중이며, 연구소 운영이야기와 바이오산업에 대한 제언, 그리고 실패와 성찰의 기록이 담길 예정이다.책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신약은 생명을 구한다. 생명을 구하는 사람은 철학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신약개발은 철학이다.” 

 . 그는 말한다.“책을 쓰다 보니, 나조차도 내가 무슨 삶을 살아왔는지 몰랐던 걸 깨달았습니다. 글로 쓰는 순간, 삶이 정리되더군요.”이 책은 단지 회고록이 아니라, 철학과 기술, 경영과 열정이 교차하는 신약개발자의 ‘노트’이자 젊은 기업가들을 위한 교본이다.김완주 회장은‘상장’을 통해 이 기술이 공공의 것으로 활용되길 바란다. 연구실에서 탄생한 혁신이 시장에서, 환자들에게, 의료 시스템에 녹아드는 것. 그것이 그의 두 번째 도전의 종착점이다.언제나 현역... 상장과 기술 공개를 향한 도약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는 경영자가 아니라 연구자다. 연구소를 떠나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다고 말한다.

연구소는 10여 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세계 수준의 연구다. 주력 기술은 ‘이온성 액체 기반의 항체의약품 경구제형화’. 한때 시트리의 미래였던 기술이다. 그는 다시 그 기술을 개인 연구소에서 되살리고 있다.현재 그는 이 기술로 기술특례 상장을 준비 중이다. 코스닥 시장 진입을 목표로, 지난 2년간 수차례의 외부 기술 검토를 받았고, 복수의 벤처캐피탈과도 협의 중이다. 

그는 ‘상장’을 통해 이 기술이 공공의 것으로 활용되길 바란다. 연구실에서 탄생한 혁신이 시장에서, 환자들에게, 의료 시스템에 녹아드는 것. 그것이 그의 두 번째 도전의 종착점이다.그는 책 『원필 원드림』의 마지막 장을 이렇게 쓴다.“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 한국이 신약 개발의 강국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후진국이다. 나는 그 시작점이 되고 싶다.”그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연구실에서 피어난 꿈

모든 사람은 ‘왜 이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직면한다. 김완주 회장에게 그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단지 돈이 아니고, 명예도 아니며, 연구자의 자부심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절박함.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컸다. 피난길에서 본 시체, 전쟁 속에서 배운 생명의 무게가 그의 열정의 뿌리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연구소에 머문다. 

그가 주저하는 순간 이 기술은 사라지고. 그래서 멈출 수 없다는 것 “사실은 저는 딴 게 없어요. 다른 IT나 이런 데는 다 선진국 수준에 다 올라왔어요.그런데 신약 개발은 후진국입니다, 신약 개발을 선진국 수준까지 올리는 거 이게 희망이고 이게 나의 전부다.”

그래서 그는 책 『원필 원드림』의 마지막 장을 이렇게 쓴다.“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 한국이 신약 개발의 강국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후진국이다. 나는 그 시작점이 되고 싶다.”

 김완주 회장은 지금도 실험 중이다. 그러나 사실, 그가 실험하고 있는 건 어쩌면 ‘자신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문과생에서 신약 개척자로. 국책연구소에서 벤처 창업가로. 그는 삶의 전 단계를 ‘실험실’처럼 살아왔다. 이제 그가 꿈꾸는 건 한 알의 약이 아니라, 한 시대의 증거다.

그리고 그 증거에는 반드시 이렇게 쓰일 것이다.

“그는 단지 약만 만들지 않았다. 그는 꿈을 계획하고 철학을 만들었다.”

원필 원드림의 씨앗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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