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팀 [CEOin PREMIUM=기획팀 ]
“더 늦기 전에 문을 닫는다.” 신성통상이 자진 상장폐지를 향해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기 전, 마지막 0.45%의 지분을 확보해 거래소를 떠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오너 2세 염상원 이사의 지배력 확장이다. 이번 공개매수는 단순한 상장폐지가 아닌, 대를 잇는 ‘승계 프로젝트’의 서막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들어 두 차례에 걸쳐 공개매수를 단행한 신성통상은 최근 지분 94.55%를 확보했다. 법정 상장폐지 기준인 95%에 단 0.45%포인트가 모자라지만, 장내 매수 등을 통해 충분히 달성 가능한 수준이다. 지난 9일까지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1,534만8498주(10.68%)를 추가 확보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특히 2차 공개매수 가격은 4100원으로, 1차 때보다 무려 78%나 인상했다. 이는 소액주주의 반발을 무마하고 상장폐지를 확정짓기 위한 사실상의 ‘프리미엄 지급’이다.
이 모든 수순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한다. 상법 개정 전 상폐 완료다.
신성통상이 서두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곧 시행될 상법 개정안 때문이다. 해당 개정안은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경영에 대한 주주 개입 가능성이 커지고, 이사에 대한 책임 추궁 소송이 쉬워지며, 배당 요구권도 보다 강력해진다.
10년 넘게 ‘무배당 기조’를 유지해온 신성통상 입장에서는 결코 반길 수 없는 변화다. 실제로 회사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배당을 하지 않으며 3000억 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유보해 왔다. 2023년,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 끝에 주당 50원 배당을 실시했지만,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성향은 8.6%에 그쳤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시장의 평가가 뒤따랐다.
더 큰 문제는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가진 비상장사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의 배당성향이 49%에 달했다는 점이다. 상장사에서는 쥐꼬리 배당을 하면서도 비상장사에서는 수백억 원 규모 배당금을 챙긴 셈이다. 이는 소액주주와의 ‘이익 공유’가 아니라 사실상의 ‘이익 분리’라는 비판으로 이어졌고, 결국 상장폐지는 불편한 감시로부터의 탈출구가 되었다.
주목할 대목은 상장폐지 이후의 구조다. 현재 신성통상의 최대주주는 가나안이며, 가나안의 지분 82.43%는 염태순 회장의 장남 염상원 이사가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에이션패션 지분 46.5%도 가나안이 소유하고 있다. 사실상 염상원 이사는 신성통상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의 중심에 서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 상장폐지는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닌, 오너 2세의 ‘지배력 정점’ 형성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장사를 비상장사로 전환하면, 신성통상이 보유한 막대한 유보금은 경영권 승계 과정의 실탄이 된다. 상장사일 때는 눈치 보던 자금 이동도 훨씬 자유로워진다. 증여, 매입, 구조조정 등의 경영 판단에 외부 감시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신성통상의 퇴장은 경영 전략상으로는 정교하고 빠르다. 그러나 그 속도 뒤에 남겨진 시장의 질문도 무겁다. 주주와의 이익 공유보다 이익의 사적 전환을 우선시한 기업 문화, 공공거래소의 역할과 한계, 제도권 투자자의 권리 보장 문제 등이다.
특히 상법 개정이라는 제도적 진보 앞에서, 이를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자칫 제도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는 상장폐지를 통한 ‘사적 영역으로의 회귀’가 기업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연결된다.
신성통상의 케이스는 한국 기업 승계사에서 하나의 전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지분증여와 그룹 내부거래 중심의 ‘물리적 승계’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비상장화를 통한 ‘사적 구조 확립’과 ‘유보금 활용’이 결합된 복합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비슷한 구조의 중견·중소 상장사들이 신성통상을 벤치마킹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 회계법인 전문가는 “유보금을 승계 자금으로 활용하려는 경영자들에게 상장폐지는 규제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며 “향후 정부의 상장폐지 관련 규제 강화 논의도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성통상이 거래소를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공개 시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던 기업이, 감시와 요구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위한 선택이자, 동시에 공공성과의 결별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누가 채울 것인가. 기업가 정신의 본질이 ‘투명한 책임’에 있다는 원칙은 상폐 후에도 유효하다. 오너 2세 체제가 굳어질수록, 그 책임의 방식은 더욱 날카로운 기준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