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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그리고 회색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리다” 김관태 작가, 조화의 미학 ‘화이부동’展으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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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5-07-06 20:44:50
  • 수정 2025-07-07 09: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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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과 백, 그리고 회색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리다”

 김관태 작가, 조화의 미학 ‘화이부동’展으로 말하다

군산 공감선유 갤러리에서 열린 <김관태 개인전>‘화이부동’ 전시회

2025.02.27 - 2025.06.28 <공감선유 갤러리 전시>


 6월 늦자락 군산에 위치한 공감선유 갤러리, 이곳은 그 자체로 특별한 무대였다. 대형 미술관이나 수도권 중심의 전시장이 아닌, 전북 군산이라는 지역도시에 위치한 이 갤러리는 묵직한 미학적 질문을 제기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달 28일까지 개최된 김관태 작가의 개인전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단순히 예술작품의 나열을 넘어선다. 그의 그림은 그 자체가 논문이며, 철학서이고, 시대의 우화이다. - 편집자 주-


“같지 않아서 조화롭다.” 김 작가는 이 한마디로 이번 전시를 설명했다. 공자의 논어에서 유래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사자성어는 그에게 있어 단순한 고전이 아니다. 삶과 예술, 갈등과 치유, 흑과 백, 그리고 그 사이의 회색. 그가 말하는 회색은 타협이나 중간이 아니라 ‘균형’이다. 흑과 백의 극단이 부딪혀 만들어낸 가장 정제된 색. 그것이 바로 중용이자 조화라는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준비 기간만 4년에 달했다. 수십 년간 김 작가가 추구해온 조화의 철학을 응축시킨 결과물로, 그는 자신이 경험해온 갈등의 시대와 감정의 중첩을 가장 순수한 시각언어로 풀어냈다. 모든 작품은 제목이 없고, 대부분 흑과 백의 무채색 계열이다. "제목을 붙이면 관객의 해석을 제안하게 됩니다. 관람자는 각자의 언어로 그림을 읽어야 해요.“

  그날, 군산의 갤러리 안에서

 계엄령이 선포된 날, 작가의 붓은 유독 무겁고 날카로웠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침묵했지만, 김관태 작가는 붓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한쪽 캔버스에는 거대한 권력이 민초를 짓밟는 장면을, 다른 쪽에는 비둘기의 자유를 그렸다. 그는 그 그림을 ‘12.3’이라 불렀고, 그것은 그가 평생 탐구해온 ‘흑과 백’의 상징이 녹아있다.

군산의 공감선유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철학적 화두를 따라, 그의 삶과 예술, 그리고 시대가 겹쳐진 공간이었다. 흑과 백이 맞닿아 만들어낸 ‘그레이zone’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화와 균형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화이부동(和而不同), 같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전시 제목은 ‘화이부동’. 공자의 논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하지만 김작가는 고전을 외우는 학자가 아니라, 현실을 사는 예술가다. 그는 “같은 것이 조화가 아니다. 같지 않아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진짜 하모니가 된다”고 말한다. 흑과 백은 극과 극이지만, 충돌이 아닌 ‘만남’을 위한 요소라며, 그 사이의 회색에 주목했다.

 "흑과 백이 만나면,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그레이가 생깁니다. 그레이는 균형입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조화의 색이죠."

이번 전시는 수년간 준비한 결과물이다. 디스플레이부터 신중하게 구성했다. 입구에는 작가 프로필이, 중간에는 간단한 작가 노트가 걸려 있다. 모든 작품에는 제목이 없다. Untitled. 이유는 간단하다. "제목은 관람객의 해석을 가로막는다. 추상화는 100명이 보면 100개의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의 붓, 철학자의 시선 

 삶이 예술이 된 김관태의 인생 드로잉

김관태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다. 그는 현실을 뚫고 나온 예술가이며, 동시에 노동현장에서의 고통과 연대를 살아낸 사회적 실천자다. 젊은 시절 그는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그 경험은 그의 삶 전체를 바꾸었다. 단지 이념이나 투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왜 우리는 계속 싸워야만 하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했다. 이 질문은 곧 그의 화폭에 고스란히 담겼다. "흑과 백이 만나면,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그레이가 생깁니다. 그레이는 균형입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조화의 색이죠."

"흑은 노동자, 백은 기득권자입니다. 갈등은 필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차별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는 언제나 조화의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것을 회색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노동자로 살며 기득권자와의 갈등 속에서 철학을 키웠다. 상대가 때론 무시할 때, 그는 오히려 자신을 돌아봤다. 그래서 공부했다. 야간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박사 과정까지 거쳤다. 그 모든 과정이 예술가로서의 성장의 일부였다고 그는 말한다. 결국 그림은 그의 투쟁이자, 변증법이었다.

  실로 그리는 인연의 풍경 – 연결을 상징하는 ‘실’ 기법

 실과 붓, 사람과 사람을 잇다

 그의 제작기법도 독특하다. 어떤 작품은 실로 그렸다. 우리가 보는 선들이 실제 실이다. 그는 실을 ‘인연’이라 부른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끈. 때론 느슨하고, 때론 단단한 그 연결의 의미를, 그는 캔버스에 꿰매듯 표현한다.

그가 사용하는 실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연, 사회적 관계, 기억의 궤적을 상징하는 중요한 조형언어다.

"인간은 연입니다. 인연이죠. 그리고 그 인연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실로 그림을 그립니다. 실이 선이 되고, 선이 감정이 되고, 감정이 결국 형상이 됩니다."

군산에 위치한 김관태작가의 작업실은 ‘아르텍(Artec)’이라 불린다. Art(예술)와 Technology(기술)의 합성어다 그의 예술관을 함축한다. “예술은 기술이고, 기술은 예술기도 하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그림은 생각의 기술이고, 마음을 설계하는 창작이라는 것이다.그의 실작업은 그 자체로 조형적 실험이다. 캔버스를 꿰고, 겹치고, 돌리고, 다시 고정시킨다. 실은 움직이고, 붓질과는 전혀 다른 역동성을 갖는다. 그는 이 작업이 회화에 대한 도전이며 동시에 재정의라고 말한다. "회화는 꼭 붓으로만 완성되어야 할 이유가 없잖습니다. 저는 선의 개념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아르텍’, 예술이 기술이 되는 실험실 ...김관태의 창작 거점

 김관태의 작업실은 실험의 연금술소

“나는 작업실이 아니라 ‘연구실’에 다닌다고 말해요. 예술은 실험이고, 창작이에요. 매년 기법이 달라져요. 바뀌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산에 위치한 김관태작가의 작업실은 ‘아르텍(Artec)’이라 불린다. Art(예술)와 Technology(기술)의 합성어다 그의 예술관을 함축한다. “예술은 기술이고, 기술은 예술기도 하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그림은 생각의 기술이고, 마음을 설계하는 창작이라는 것이다. “예술가는 반복하는 장인이 아니라 실험하는 창작자여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김작가의 작업실과작업 도구들과 군산바닷가에서 수집한 밧줄)

그는 매년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며, 반응을 분석하고 다음 작업에 반영한다. 이른바 창작의 데이터 기반 실험이다. 일부 작가들이 한 가지 기법을 고집하며 평생을 보내는 것과 달리, 그는 매 전시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예술가는 반복하는 장인이 아니라 실험하는 창작자여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군산의 작업실은 25년 동안 그의 삶의 터전이자 작품의 원천이다. 지금 연구소앞의 컨테이너도 그대로다.  현재의 연구소 설립전 컨테이너 생활과 공장 기계음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그야 말로 삶이 곧 그의 작품이 되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기법을 배우기 위해 통도사까지 찾아갔던 일화다. 옷칠화의 대가 성파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기 위해 그는 통도사에서 1년간 머물며 직접 먹고 자고 함께 공부했다. 성파스님의 1호 제자가 된 것이다. "기법은 곧 수행입니다. 예술도 수련입니다.“

소년의 붓, 어른이 되어도 지지 않았다 

화가가 된 김관태의 유년

김관태는 초등학교 이전부터 그림을 그리던 아이였다. 유난히 감성적이고 관찰을 좋아하던 아이는 초,중 시절 모두 이미 사생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당시 서라벌 예술고의 장학생 제안까지 받았지만, 가정 형편과 부모의 반대로 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대학, 미대, 그리고 전문 작가의 길을 스스로 걸어냈다.

 “예술가는 길이 아니라, 본능입니다. 나는 그림을 안 그리면 살 수 없었어요.”

그는 스스로의 인생을 ‘그림이 살려낸 사람’이라 말한다. 유년의 꿈을 놓지 않았기에 지금의 김관태가 있다.

 ‘12.3’이라는 날, 그리고 그 날의 그림 ... 시대의 기억을 그리다

 작품은 말이 없지만, 이야기가 있다

 계엄령과 자유, 시대의 감정을 담은 ‘12.3’ 

 전시작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12.3’이라 작가가 부른 두 작품이다. 하나는 계엄령 선포일에 대한 직접적인 시각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두 작품은 작가가 현실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예술로 치환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계엄령이 선포되던 날, 그는 붓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건 시대의 요구였다는 설명

그는 말로 하지 못한 울분과 두려움, 그리고 희망을 이 작품들에 담았다. 권력의 그림자 아래 눌린 민중의 형상,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아오르려는 생명력. 두 작품은 흑과 백,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회색을 중심으로, 조화라는 개념의 깊이를 한껏 확장시킨다.

 그림은 글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장애를 넘어선 공감...실어증 친구와의 그림 대화

 그는 그림을 그리기 전 글을 쓴다. 낙서처럼, 일기처럼. 그것이 작가 노트가 되고, 머릿속 풍경이 된다. 그리고 그 풍경은 어느 날 형상이 된다. “내가 살아온 길을 그리는 것이죠. 내가 살아갈 길을 그리는 것이기도 하고요.”그림 속 형상은 단순하다. 색도 단순하다. 오직 흑과 백. 그래서 어렵다. “형상이 단순할수록 메시지는 명확해야 해요. 그 단순함이 그림을 어렵게 만들죠.”  김관태 작가의 초기 작품들(사진)

그림 속 형상은 단순하다. 색도 단순하다. 오직 흑과 백. 그래서 어렵다. “형상이 단순할수록 메시지는 명확해야 해요. 그 단순함이 그림을 어렵게 만들죠.”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이해했다. 아니, 느꼈다. 실어증을 앓던 옛 친구가 그의 그림을 보고 울었고, 말도 글도 못하던 그가 그림으로 친구를 알아봤다. 

김작가의 그림이 말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일화다. 50년 만에 만난 중학교 친구는 실어증에 걸려 있었다.  말도 글도 할 수 없었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늘 그 친구의 곁을 함께 지키는 그의 부인에게 친구는  손짓으로 말했다. ‘좋다’고. 

“그 친구는 내 그림 하나를 사겠다고 했어요. 친구가 내민 지갑속에는 15만원이 전부 였습니다. 원래는 1,400만 원짜리였지만, 나는 15만원만 받았어요.  보통 그림을 그냥 공짜로 주면  버리는 일이 있어 버리지 않게 하기위해 받았지요 하하하.”

그는 그 친구에게 전주까지 가서 밥도 사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다시 삶을 연결했다. 그림이 친구와 자신을 이어준 것이다.군산에 위치한 공감선유 갤러리, 이곳은 그 자체로 특별한 무대였다. 대형 미술관이나 수도권 중심의 전시장이 아닌, 전북 군산이라는 지역도시에 위치한 이 갤러리는 묵직한 미학적 질문을 제기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군산이라는 캔버스, 지역과 함께하는 예술

김관태 작가는 또 다른 그림(?)을 구상중이다. 군산이라는 도시를 단지 전시 장소가 아니라 예술의 출발점으로 본다. 고군산군도와 새만금, 평야와 산, 바다와 도시가 함께 있는 이 지역은 그에게 있어 ‘자연이 만든 예술 무대’다.

“이런 지역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위치나 거리보다 중요한 건 콘텐츠입니다. 좋은 전시가 있다면, 사람들은 어디든 옵니다.”그는 군산에 더 많은 미술관이 생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여지(餘地)’가 있기 때문이다. 낙후는 곧 가능성이고, 문화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 된다. 그는 지금 전시회를 하는 군산의 이곳 갤러리 공감선유 같은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목 없는 그림, 끝나지 않은 질문

 앞으로도 그는 계속 그릴 것이다... 김관태의 길

 끝까지 묻는다, 갈등은 정말 끝나야만 하는가?

 그의 작품은 대부분 제목이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림은 질문이지 정답이 아닙니다. 제목은 질문을 닫아버리는 장치입니다."

김작가는 그림을 통해 관람자와 대화를 나눈다.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 그림은 관객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힌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다름,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짜 조화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직업이 아니라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다음 목표는 군산이라는 도시 전체를 문화예술로 연결하는 것이다.김관태작가는 그림을 통해 관람자와 대화를 나눈다.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 그림은 관객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힌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다름,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짜 조화다.

“예술은 산업보다 오래갑니다. 이 지역이 AI나 제조업으로 성공할 수도 있지만,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면 더 지속가능해질 수 있습니다.”김관태 작가는 오늘도 흑과 백을 섞고, 실을 꿰고, 회색을 만든다. 그 회색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상대와 내가 달라도, 너무 내 주장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발짝 다가가 보는 것, 그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그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갈등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그는 ‘그레이’를 말한다. 중용과 조화, 서로 다른 것을 품는 하모니.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예술이고, 내일의 길이라는 것.

그는 여전히 붓을 든다. 흑과 백 사이를 건너며, 오늘도 ‘보이지 않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가 그리는 그림은, 김관태라는 사람 그 자체다.



군산 공감선유 갤러리에서 열린 <김관태 개인전>‘화이부동’ 전시회


2025.02.27 - 2025.06.28 <공감선유 갤러리 전시>  주요작품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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